2021년 작성글.
전남 곡성에 내려온 지 3년이 지났습니다.
영화에서나 들어본 지역, 두 달간 전국 여행을 할 때도
가볼 후보에 올리지도 않았던 지역,
그런 곳에서 내 삶의 1/10을 보낼 줄이야…. 나는 불행히도, 혹은 다행히도 생존형 인간인지라
평생 엄마 품밖에 모르는 일명 ‘서울에서 의 나’를 버리고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습니다.
어떤 날에는 서른 인생에 첫 자취를 서울에서 5시간이나
떨어진 시골에서 시작한 내가 대견하기도 하면서,
또 어떤 날에는 원래의 나를 완전히 잃어버린 것 같아
괴로웠습니다.
가끔은 즐겁고 대부분은 괴로운 날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나는 아직 곡성에 삽니다.
나의 곡성 유랑기, 생존기는 진행형입니다.
처음 6개월 정도는 삶의 다시없을 활력이 넘쳤고 누구보다 불타는 열정으로 하루하루를 불태웠습니다.
그때는 그저 긴 여행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으니까요.
매일 사람들을 만났고 입이 마르도록 대화를 나눴고
크게 웃고 요란하게 울었습니다.
사람들은 내게 따뜻하다, 정이 많다, 활력이 넘친다며
나를 좋아했습니다. 나도 이 여행을 좋아했습니다.
그다음 6개월은 여행자에게는 절대로 보이지 않는
삶의 뒷골목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길가의 예쁜 쓰레기통이 스치는 여행자에게는 사진 한 두 장 찍고 지날 풍경이지만,
그 쓰레기통을 비우고, 닦고, 지켜봐야 하는 생활자에겐
그리 아름다워 보이지 않으니까.
그 무렵 나는 길가에 로드킬을 당한 동물들을 참 많이
보았습니다.
전엔 그저 하나의 에피소드 같던 도로가의 동물 사체가
매일 같이 눈에 띄니, 이보다 고역이 없었습니다.
어느 날은 고양이가 죽고, 어느 날은 너구리가 죽고 또 어느 날은 가끔 먹이를 주던 강아지가 죽었습니다.
그러다 점점 죽어가는 이 도시가 보였습니다. 여긴 온통
죽은 것들뿐입니다. 어느 것도 성장하지 않습니다.
점점 죽어갑니다.
아이들은 고등학생이 되면 광주, 서울, 순천으로 학교를 옮겨갑니다. 청년들은 일자리를 찾지 못해 도시로, 도시로
떠밀립니다.
가끔 나같은 떠돌이 청년들이 찾아오지만, 이 지역에선 모두 외래종들입니다. 토종들은 외래종을 미워합니다.
곡성에 내려온지 1년이 지나서야 사실은 나 혼자 시들어가고 있음이 보였습니다.
곡성은 늘 섬진강이 흐르고 녹음이 푸르고 산새 지저귀는
아름다운 농촌마을이었습니다.
나의 눈이 퀭해서 이 푸른 땅도 모두 회색으로 보일 뿐입니다.
그 무렵 나는 글을 쓰지 않게 되었습니다. 어디 가서도 내 직업이 사실은 작가다,라고 말하기가 부끄러워졌습니다.
글은 한 줄도 쓰지 않고 명함만 작가면 무슨 소용일까 싶어졌습니다.
그렇다고 前 작가입니다 라고 소개할 수도 없으니, 그냥 귀촌 청년입니다. 놀고 있습니다,라고 밖에는 달리 할 말이 없어졌습니다.
아직 내가 곡성에 남아 있는 건 미련이고 고집이란 걸 압니다. 나는 도망치듯 고향으로 돌아오고 싶지 않습니다.
금의환향은 못해도, 언젠가 그곳을 떠나야만 할 때가 온다면 가장 기쁜 날 고향으로 돌아오고 싶어요.
이것이 미련이고 고집이란 걸 압니다. 정말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럼에도.